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무슨 설문조사를 할 때면 늘 빠지지 않는 항목중의 하나가 바로 "종교"란이다.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천주교"를 썼었는데, 마치 그 항목은 우리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어린 마음에 뿌듯하게 표시를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다민족이 섞여서 사는 곳이었다면 나의 민족 (ethnic group)을 밝히라는 질문이 빠질리 없었겠지만.

인종차별의 문제나 소수민족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로 민족에 대한 조사항목이 없어지고 있는 미국이나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하면, 아직도 많은 설문조사에 종교에 대한 항목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라는 것이 민족의 고유성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부수적 문화일 뿐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문화적 종속성을 심어주고 있는 것인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지역차별 혹은 지역감정이 있었던 (현재도?) 적이 있어서, 고향에 대한 표기를 금기시하게 되었지만, 종교만큼은 너그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나의 조부모님은 모두 천주교이셨다. 그 옛날 일제시대에 흔하지 않았지만, 두분 모두 세례명을 서로 부르는, 요즘으로 보자면, 아주 세련된 분들이셨다. 할아버지의 일기를 읽다보면 그 시대에 흔치 않았던 여성에 대한 배려와 사회기반이 되는 기본 요소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서로에 대한 호칭이었다. 이분들을 직접 뵌 적이 없어서 실제로 어떻게 사셨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이러한 할아버지의 많은 부분이 종교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서양의 많은 역사가 말하듯, Roman Catholique은 아주 보수적인 종교이다. 하느님 (성부/성자/성령)아래에 교황이 있고, 그아래 추기경이니 주교니 뭔가 복잡한 서열이 존재하며, 신부와 같은 성직자에게 내려지는 엄격한 규율들이 있으며, 수녀와 같은 수도자에게도 많은 의무들이 있다. 우스개 소리로, 기독교의 예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미사동안 수차례 반복하기도 하고, 때가 되면 신자로서 고해(고백)성사를 보는 것 뿐만아니라 많은 예식을 치루는 의무가 있다. 이렇듯이 그 규모가 워낙에 커서일까, 뭔가 하나가 바뀌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식지도 않고, 오랜 경험에 의한 안정감도 있다. 내가 모태신앙을 가지고 살아온 탓도 있지만, 천주교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난 아직도 스스로를 천주교 신자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배우고 들은 바에 의하면, 한국 천주교는 선교사에 의해서 처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생한 "천주교"가 서양의 로마카톨릭을 접하게 되어,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이는 북미의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하늘님"을 섬기는 것과 비슷한 형태인데, 만물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이를 다 만들어 놓은 것이 누구이며, 인류존재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를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숙고의 과정을 거쳐 올라가보니 그 위엔 뭔가 창시자 혹은 창조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고의 흐름일 지도 모른다. 당시 불교가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수련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깨달음을 가지는 것 이상의 철학적 의문이 드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이 이후에 4번의 큰 박해시기를 거쳐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뿌리내리게 된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나왔듯이 우리나라에도 우리만의 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문화적, 정신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진화된 형태인데, 대표적인 예가 사회정의에로의 천주교라는 것이다. 10대에는 종교는 사회와 먼 것이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신부님이 정치적 견해를 강론시간에 표현하는 것이 거북하고, 싫었다. 그저 나의 내면속에서만 종교가 작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 혹은 내 주변인물들에게 조금이나마 종교적 신념을 보여주는 행위를 통해 이를 전파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종교관의 모든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천진한 (naive) 믿음은 대학입학무렵 접하게 된 신앙학교에서 깨어져 버렸다. 예수가 혁명가라니??? 나로서는 두렵기만 했다. 여기에 관해서는 할말이 너무나 많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사회참여적인 종교관으로 탈바꿈한 이유는 바로 성경을 다시 접하면서였다. 어릴적 감탄하며 읽었던 동화같은 기적행위가 과학적,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기 시작했고, 거기에 따라 나의 생활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종교가 내면세계에만 집착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 예수처럼 살고, 나머지는 자기 본모습대로 사는 것같은, 다시말해 생활과 종교가 나뉘어져 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시위를 할 때에도,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평화행진을 할 때에도 나는 내 목소리의 근본이 종교와 맞닿아 있어서 좋았다. 갈등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물론 맹목적으로 이것이 하느님이 주신 세상이기 때문에, 혹은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라고 부르짖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 대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종교를 통해 나와 사회가 화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내 종교생활과 신앙에 크게 회의하지 않는다. 물론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많고, 인간에 의해 조작되어진 부분도 적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사상을 조장하는 구약부분에서는 맥이 풀린 적도 많이 있고, 왜 하느님이 인간처럼, 너무나 인간적으로 요구하시는 걸까 하며 의문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대학이후, 시라큐스에 유학와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바오로의 서간문을 하고, 지금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는 "성서개론"을 하고 있다. 이 공부를 통해, 하느님이 뜻하시는 바를 10년전과는 또달리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일단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구약에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모습은, 모든 아이들을 다스릴 수 없어서, 소수의 아이들만을 불러서 꾸중하는 선생님 같으신 모습이었다. 잘 할 때까지 채찍과 당근을 골고루 주시는 모습. 그리고 또다른 의문은, 하느님이 왜 너무나 인간적인 요구를 하실까 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에게 물질적 헌납을 요구하거나 하느님의 몫을 미리 배당하라고 꾸짖으시는 것은 왜일까 하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누가 식물인간인체로 사경을 해매다 의식을 차렸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속에서 하느님을 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그 사람이 가진 재물을 요구하셨다는 것이었다. 난 단박에 그 사람의 말을 부정했다.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리 해석된다.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현재 돈으로 표현되는 물질적인 가치이다. 자신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을 내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하느님은 이를 너무나 잘 간파하고 계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당에 가서 매일미사를 드리고 살겠다거나 하루에 묵주5단씩 바치겠다는 둥...이러한 것은 나의 큰 부분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가치있는 뭔가를 늘 요구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바라시는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 역시, 늘 겸손하게,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부족해지는 것이 바로 겸손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빈깡통일수록 더 요란한 법. 그러고 보면 모든 종교는 사회속에서 어느순간 맞닿아 있는 가보다. 그 가르침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니.

앞서 한국의 천주교의 문화적 사회적 관련성을 언급했었는데, 지난 새만금 삼보일배 시위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불교인, 기독교인, 천주교인이 모두 행렬에 나섰는데, 그것이 하나도 어색해보이지 않을뿐더러, 우리나라의 종교인들이 사회적으로 참으로 건전하며, 문화적 저력이 여기에서도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외부에 적이 생기면 내부의 단결력은 한층 강해지는 법칙이 적용된 것일까? 하지만 단순히 의기투합한 일시적 행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NGOs 활동을 보면 우리만의 독특한 색채를 띠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종교를 넘어선 사회적 연대성이라는 것이다. 아직 뚜렷한 연구를 접한 적은 없지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시민사회 운동은 반드시 이 부분을 포함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홈페이지라는 매체는 나만의 공간이 아닌, 열려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나의 종교관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서 이곳에 올린 까닭은 나 스스로를 정리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지는 사뭇 의문(?)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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