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지금까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햇수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간 내가 무엇을 배웠고,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는지 퍼뜩 생각해보니 뚜렷하지가 않았다. 국어,영어,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도덕, 사회, 지리, 국사, 세계사, 체육, 음악, 미술, 가정, 가사, 한문, 불어...각 과목명을 들추면서 되돌이켜보니 그래도 모든 과목이 조금씩은 지금의 나를 이끌어주는 기반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자신없었던 국어. 말만 할 줄 알면, 읽을 줄, 쓸 줄 알면 되는 줄 알았었는데, 그나마 분석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 이렇게라도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남들 앞에서 정상적인 국어표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국어과목에서 나에게 남겨준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문법이나 작문에 소홀했던 탓인지 문맥의 앞뒤가 구성지게 흐르지 않을 때도 많이 느낀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그래도 시나 소설, 수필을 작가와 나의 교감으로 읽지 못하고, 참고서적의 설명을 객관적 사실로 여기며 읽었던 기억이다. 나만의 감상이 사라진 국어시간덕에 아직도 난 누군가의 모범답안을 찾을 때가 있다.

영어시간은 그나마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최소한 중학교때까진. 영어를 말로 배우기보다는 글로 배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의 학습속도는 느렸지만, 남의 말을 잘 따라하는 나의 잔재주 덕에 얕은 영어실력을 아직도 그럴싸하게 포장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영어로 남의 생각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기엔 아직도 역부족이란 생각이다. 홈페이지 글들을 통해서 좀 더 노력해 보련다.

수학....내가 이과를 선택한 사실을 두고, 몇몇 사람들은 내가 수학을 잘 했었을 것이라 넘겨짚기도 하지만, 나의 수학실력은 이과반의 평균정도를 벗어나질 못했었다. 물론 GRE시험에서는 한국의 수학실력을 과시라도 하듯 최고점수를 받았지만, 경제학이나 공학에서 사용되는 식을 이해하는 수준에도 못 미칠때가 종종있다.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물리, 화학, 생물, 지학..한꺼번에 과학이라고 하자. 난 외우는 것은 질색을 하는 사람이다. 특히 생물같은 과목은 내게 늘 어려운 암기과목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좀더 자연친화적으로 살았었더라면, 혹은 내가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할 대상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더라면, 혹은 느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 말이다. 나의 상상력 부족때문이라거나 관찰력부족이라고 탓하자면 할 말 별로 없지만, 많은 과학 현상들을 접해보지 않고, 그 해석을 따라서 믿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다시금 선생님들께 여쭙고 싶은 마음이다.

도덕이라...내가 도덕 시험을 잘 못봤을 때, 친구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내가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니?" 난 아주 상식적이고, 보통의 윤리적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데도 도덕시험을 잘 못 볼 때가 있었던 것이다. 반공이라는 틀이 사유, 철학과 함께 등장한 이상한 교과서도 그랬지만, 항상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과목의 범주에 "도덕 시험"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나에겐 아이러니 같은 것이다.

사회시간. 난 사회책안에 나오는 경제학이 싫고, 법이 싫었다. 그 작은 책하나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버거웠다. Macro Economics 시간에 국민경제를 들여다보면서도 그때가 생각나서 헐레벌레..읽는 둥 마는 둥하며 재미를 잃어버린다. 경제학이나 법학이 나름대로 재미있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외워서 시험보기 싫어서 난 지리과목이 더 좋았다. 지리역시 외울 것이 많지만, 왠지 지리는 아주 실용적이란 느낌을 가졌었다. 지금도 난 지리과목을 좋아한다. 어디든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뭔가 새로운 문명을 만나고 탐험하는 것을 좋아해서일까?

가정,가사. 하하...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이해하는 과목이다. 어릴적 실과에서 시작해서 고등학교 가사과목까지 줄창 요리, 영양소 이런 것들을 들여다 봤었는데, 요즘에 와서야 제대로 써먹는 지식이 되었다. 물론 가정이라는 과목을 단순히 요리나 가르치는 수업쯤으로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족이란 개념을 이해하고 들여다 보는데 있어서 가정만큼 도움이 되는 과목도 없다. 좀더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과목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왜 사회와 가정은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국사나 세계사과목은 나에게 가장 취약한 과목이었지만, 지금은 아주 재미있게 다가오는 분야이다. 한국의 역사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나 그 변동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주 교과서적인 표현같지만...) 좀더 재미있게 역사를 들여다 보려면, 역사의 주요 변환점이나 변동의 역학을 특정한 시각들로 해석하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우연의 역사라든가, 숲의 역사를 통해 바라보는 것도 좋은 예이다.

체육, 음악, 미술...이런 예체능 과목들은 정말로 우리의 심신을 살찌우는 과목들이다. 체력장이 있고, 실기시험이 있어서 기분과 상관없이 늘 같은 시간에 반복했어야 했지만, 그것도 훈련의 일종인 것을.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키우는 것만큼 기분좋은 시간도 없다.

한문을 제 2 외국어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중국 언어로 치면 한문이나 불어수업은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문을 읽음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문화는 그만큼 넓어지고, 불어나 라틴어를 알게 됨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문화는 또 그 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여행을 가거나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이 수업들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나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영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론 즐거운 모험이다.

개요가 너무 길어졌다. 아무래도 인덱스는 윗쪽에 처리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근래에 배우는 학문은 기존의 학문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고 봐야 하겠다. 위에 언급한 교과목들은 크게 세상에서 배우는 굵직한 학문 분야들인데, 내가 하고 있는 공부는 하나의 분야에 속해있지는 않고, 여러학문에 걸쳐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어로는 Interdisciplinary study라고 하는데, 문제중심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하나의 분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발전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면 "환경정책"이라고 말하지만, 환경정책이 정치학과 정책학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국한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내가 하는 공부는 학부에서 배웠고, 지금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자연과학, 특히 Ecology, Biology, Hydrology, Geochemistry, Toxicology"을 통해 환경문제의 진행과정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경제학을 통해 정책형성의 기본을 공부하게 된다. 물론 정책결정과정에 따라 정책자체의 선택은 달라지지만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환경문제의 발생과 관련된 환경사회학이나 정치학, 경제학이 중요한 위치에 있기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공부하는 분야는 생태경제학이다. 기존의 경제학이 인간, 기술, 자본을 중심으로 연구를 했다면, 이와는 달리 생태적 한계성을 받아들이고, 인간과 환경/자연의 인과관계를 발전/진화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생태경제학 내에서도 다양한 Sub-groups이 존재하고, 연구의 방향도 다르지만,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응용하려는 전공은 생태가치 평가이고, 생태적 중요성이 정책에 있어서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생태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울부짖는 것뿐만 아니라, 왜 생태적 변동이 인간의 사회나 발전에 있어서 큰 영향이 되고 있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우리가 되돌이킬 수 없는 정책실패를 피하기 위함이다. 많은 정책연구가 손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C & B는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찾는 것이다.

가야할 길이 멀다.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이해하기 힘든 것도 너무 많다. 가끔은 남들 가는대로 나도 그렇게 살면서 행복하고 싶을 때도 많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Vision을 찾으면서 또 가능하면 제시도 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게 개인적인 욕심이고 장기적 행복찾기이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과학적 방법론이나 많은 담론들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 없어서 힘든 때가 많이 있었다. 아직도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는 있지만 능력부족을 탓하며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이 있다. 남들이 나처럼 열심히 갈구하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날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로마가 멸망한 것은 그들의 Ideal이나 목표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변동이라는 것은 진화처럼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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